2015년 1월 1일 목요일

2014 돌아 본 나

2014년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지기도 전에 2015년이라는 시간과 마주쳐 버렸다. 시간이 쌓여 가는 무게가 버겁다. 2014년이 아직도 내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시간을 방치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으로 시간을 멈춰 버린 것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게 됐나 보다.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내일에 대한 설레임이다. 10대를 지나면서 불만을 배웠고, 이상을 조각했으며, 욕망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20대에 나는 싸울 준비를 했고, 싸웠다. 아직은 패배가 무엇인지 모를 나이. 다가올 승리의 날을 환상하며 내 가슴은 또 얼마나 부풀어 있었던가...


서른, 시인의 말대로 잔치가 끝나자 불꺼진 방안에 널부러진 빈그릇들만이 머쓱한 눈빛으로 바라 볼 뿐이다. 주섬주섬 다시금 쓸고 닦고, 불을 밝혀 보려했지만, 세상은 말한다.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힘껏 헤엄치다 결국 현실이라는 바다에 서서히 가라 앉게 되면 그제서야 현실의 깊이를 체감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힘으로는 현실의 무게를 이겨낼 수 없음을 순순히 받아 들였나 보다.




현실에 순종하기 시작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라면 끓이기가 귀찮아서 냉동 만두를 3분30초간 해동시켜 먹는다. 사다 놓은 간장이 다 떨어져도 소금으로 대신할 수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인지, 믹스커피의 단맛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 체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 거울을 보면 화가 났었지만, 이제는 안쓰럽다. 적어도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고, 중도 못깎는 자기 머리를 나는 직접 깎는다. 거짓말을 못해서 불편한 사람이 되었고, 진짜 이야기를 못해서 답답한 사람이 되었다. 마르크스의 천재성에 열광하다가 이제는 마르크스의 인간성에 뭉클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치에 관심없다가 정치를 알게 되자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외로움이 사무칠 때면 그 외로움을 방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슬프면 그냥 우는 사람이 되었다. 갖고 싶은 것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하나둘 갖기 시작했다. 늘씬한 예쁜 아가씨가 이제는 예뻐 보이지 않고, 어여삐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없고, 도전이 없기에 포기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2015년의 나는 찍어둔 카메라 렌즈를 구매할 것이고, 노트북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할 것이다. 렌즈를 사고도 따 다른 카메라에 욕심이 생긴다면 그건 내 후년으로 미루도록 자제해 볼 것이고, 멍하니 지내는 시간보다 사진 찍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주말이면 밤보다 낮에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많은 곳을 다녀 볼 것이다.
또 작은 바람이 있다면 천성적인듯한 이 놈의 조울증이 조금은 사라졌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선 노래짓고부르는이내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